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사레 보르자 (문단 편집) == 예수 초상화 음모론 == [[파일:external/37.media.tumblr.com/tumblr_lyiztg63km1qisa2ko1_1280.jpg]] 한편 이 냉혹한 학살자가 바로 현대에 그려지고 있는 [[예수]]의 서양식 초상화의 모델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그의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지배 시기에 대놓고 예술가들에게 예수의 초상화를 그의 얼굴을 본따 그리게 했다는 것으로, 이것은 프랑스의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가 제기한 설인데 학술적으로는 그다지 신빙성 없는 떡밥으로 영문위키에서는 토론에서 지지 측이 근거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해서 본문에는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참고로 [[https://en.wikipedia.org/wiki/Cesare_Borgia|위키백과 영문판]]에서는 위의 체사레 초상화조차 '''체사레 보르자의 초상화'''가 아니라 '''이제까지 체사레 보르자의 초상화라 [[카더라 통신|카더라]]는 그림'''이라고만 되어 있다. 즉, "체사레를 그린 저 초상과 예수의 초상이 서로 닮았다!"라는 말에 대해, "닮지 않았다."도 아니고 "저 초상이 과연 체사레가 맞기는 한가?"라는 것이 위키백과 영문판의 공식 입장. ||<-2> [[파일:Ravenna_Jesus.jpg|width=100%]] || [[파일:sinai jesus pantocrator.jpg|width=100%]] || || [[라벤나]]의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의 모자이크, 5세기(左) || 라벤나 대성당의 모자이크, 6세기(右) || 성 카테리나 [[수도원]], 이집트 [[시나이 반도]], 6세기 || 애초에 흔히 알려져있는 예수의 초상은 체사레보다 훨씬 이른 것으로, 6세기 경 중동에서 유래한 것이며, [[유스티니아노스 2세 #2.1.3.]] 문서에서 보이듯, 7세기쯤 되면 동로마 황제의 솔리두스 금화에서도 그러한 형상이 확인된다.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흔히 묘사하는 예수의 모습이 서구의 미남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 르네상스가 기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실제로는 정작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에서는 위 이미지 중 좌측의 예시처럼 마치 아폴론 신 같은 수염 없는 청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지금 알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는 중동에서 유래된 그림이 기존의 이미지들을 밀어내고 정착한 것이다. 즉, 체사레가 예수 외형의 모델이라는 이야기는, 시간적 순서를 고려하더라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러한 예수 표준 영정 모델 음모론은 체사레뿐만이 아니라 [[알브레히트 뒤러]][* 참고로 뒤러는 자신이 [[예수]]와 닮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켜서 나타낸 [[자화상]]을 그린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서구권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자화상을 그린 최초의 인물이다.] 등 예수와 닮은 것 같은 사람에게 흔하게 따라오는 떡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음모론이 한국 인터넷 일부에서 사실인 양 잘못 알려져 정설로 믿는 사람들이 꽤 된다. 체사레 모델설에서는 "[[중세]] 때도 머리 긴 예수 그림이 있었지만, 현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이나, 실제 유물을 보면 6세기에 그려진 예수 초상은 이미 현대의 이미지와 거의 같다. [[하기아 소피아]] 등 12세기면 이미 현대의 예수 초상과 충분히 같아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